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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영유아 발달

팬데믹이 초래한 언어 발달 격차,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1. 언어 발달 지연의 그림자: 팬데믹이 남긴 보이지 않는 격차

팬데믹이 초래한 언어 발달 격차,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은 의료,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지만 매우 중대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영유아의 언어 발달 지연입니다. 유아기는 언어 능력이 급속히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이지만, 팬데믹은 그 시기의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어린이집·유치원 휴원, 마스크 착용 등은 아이들의 얼굴 표정, 입모양, 목소리의 높낮이와 억양 등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모방할 기회를 크게 줄였습니다. 특히 마스크는 음소 인식비언어적 의사소통에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하며, 말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 동안 영유아 언어 지연 진단 비율이 1.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래와의 놀이, 집단 활동, 상황극과 같은 사회적 경험은 언어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팬데믹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제한되면서, 언어는 단순한 말 배우기를 넘어서 소통 능력 전반의 지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후 학습과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발전할 우려가 큽니다.


2. 가정의 역할 재정립: 부모와 보호자의 언어 환경이 해답이다

팬데믹 속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언어적 자극은 부모 혹은 보호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로 인해 가정의 언어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재택근무, 경제적 스트레스, 육아와 가사 병행으로 인해 아이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시간 모두 부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지 마", "조용히 해", "빨리 해" 같은 단순 지시형 언어가 많아지고, 아이의 언어 자극 기회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언어 발달을 위해서는 아이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수를 허용받으며, 질문과 상호작용을 즐기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그 의미를 되물으며 확장해주는 방식은 효과적인 언어 교육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고양이 봤어!”라고 말하면 “고양이 어디 있었어?”, “어떤 색이었어?”라고 되묻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림책 읽기, 이야기 만들어보기, 말 따라하기 놀이는 부모가 특별한 교육법 없이도 실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언어 자극 방법입니다. 하루 15분, 매일 반복되는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아이의 어휘력, 문장력, 표현력이 놀랍도록 향상됩니다.


3. 디지털 격차와 언어 격차: 온라인 환경의 양면성

팬데믹은 영유아의 생활 전반에 디지털 미디어를 빠르게 침투시켰습니다. 유튜브 키즈, 온라인 놀이학습 앱, AI 스피커 동화 읽기 기능 등은 분명 도움이 되는 도구일 수 있지만, 사용 방식에 따라서는 오히려 언어 발달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잠시라도 조용히 있게 하려고 영상을 틀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 미디어 소비는 아이의 뇌 발달, 특히 언어와 관련된 영역을 덜 자극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반응하며 소통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내용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아이들은 혼자 시청한 아이들보다 언어 발달 속도가 빠릅니다. 이처럼 디지털 미디어도 쌍방향적, 상호작용적인 사용이 전제되어야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애니메이션을 본 후 줄거리를 되짚어보고, 등장인물의 대사를 따라 해보거나 관련된 주제의 단어를 반복하는 활동은 언어 발달을 도와주는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용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콘텐츠를 선별하며, 가능한 한 자극적인 영상은 지양하고 언어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공공의 개입과 회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 우리가 함께할 일들

영유아의 언어 발달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곧 미래 세대의 학습 능력, 사회성, 심리 안정성과도 직결되며,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건강한 소통 구조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가정만의 몫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조기 언어 발달 검사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보건소나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무료 언어 상담과 놀이 기반 언어 자극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특히 소득 수준이 낮거나, 다문화·한부모 가정처럼 언어 환경이 취약한 집단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된 언어 발달 멘토링,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 활동, 또래 언어 놀이 모임 등을 활성화하면 격차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형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마음껏 표현하며,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팬데믹이 남긴 격차를 인정하고, 그 회복을 위한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닐까요?